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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영 : 자기소개와 간단한 작업 설명 부탁합니다.

백경호 : 저는 주로 회화작업을 하고 있어요. 보통 유화나 연필 같은 재료를 사용하고, 캔버스를 이용한 공간 설치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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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영 : 어떤 걸 그리시나요?

백경호 : 제가 몸담고 있는 시각 환경에 대한 인상과 인식을 회화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 방식은 제가 일상에서 수집한 이미지를 편집하고 조합해… 음. 생각이 안나네.

권순우 : 몸담고 있는 시각 환경이란 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백경호 : 몸담고 있는 시각 환경은 일상뿐 아니라, 사회와 내가 접하고 있는 환경까지 포함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요즘은 디지털 영역도 일상의 영역에 속하잖아요. 저는 그것들 또한 사회의 표면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것들로부터 작업이 출발하는 것 같아요. 최근 개인전에 있던 작업에서부터 그런 부분이 조금 더 부각 됐어요. 지금은 스마트폰, 인터넷 같은 디지털 환경이 거리의 풍경도 바꾸잖아요. 거기서 저는 제가 ‘주체적으로 수동적’이라는 이상한 인상을 받았어요. 많은 콘텐츠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괜찮고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제가 클릭을 하는 건지 당하는 건지 모호해진다고 느꼈거든요. 광범위한 디지털 영역과 내가 맺는 관계 속에서, 나의 존재감이 미미해진다고 생각했어요. 방에서 이런 생각들로부터 시작된 공상을 많이 했어요. 저는 몸을 갖고 있고, 생활하고 있는데, 방의 인테리어와 놓인 사물들, 노트북, 스마트폰 속에서 제가 난파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형광등이 나를 바라본다면, 이 방에 살아있는 게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움직이지 않을 때도 잦고, 허무해지면 밖에 나가서 산책도 하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 부정적이진 않았어요. 심각하게 이걸 고민한다기 보다, 다른 사람들도 다 비슷할 것으로 생각했어요. 내가 의식하지 않았는데도 남아 있는 게 뭘까. 내가 난파된 거라면 제 옆에 같이 떠내려온 것들은 뭘까. 그런 것들의 리스트를 적어 봤어요. 핸드폰, 생활의 사물… 계란 같은 것도 있었고, 휴대전화 배경화면, 제가 응원하는 축구팀, 애니메이션에서 본 여자 캐릭터. 그때는 이걸 가지고 작업에서 뭘 할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거든요. 그러다가 이것들로만 회화를 구성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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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우 :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런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왜 회화라는 매체를 선택했나요?

백경호 : 단순히 제가 해오던 것이라서 하는 것도 있고, 물감이 좋고. 또, 눈에 보이는 부분 말고도, 이미지의 표면에 질감을 입히고 싶었거든요. 그러기에 물감은 너무 적합한 재료였어요.

권순우 : 질감을 입힌다는 건 혹시 포토샵에서 레이어를 쌓는 느낌과 비슷한 건가요?

백경호 : 다른 것 같아요. 저는 회화에 디지털적인 것을 담지, 디지털 영역에 대해 담는 것 같진 않아요. 회화는 보이지 않는 것을 간접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형식에 대한 오래된 지식과 방법들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디지털의 속성을 다루기에 회화과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권순우 : 그래서 최근 작업에 미술사에 나오는 회화의 모작 같은 것들이 등장하는 건가요?

백경호 : 그건 아니에요.

권순우 : 그럼 왜 갑자기 옛날 회화의 도상이 등장하는 건가요?

백경호 : 미술사를 참조하겠다는 생각보다, 큐비스트의 구성 방식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어요. 그 사람들도 다양한 시점을 하나의 화면에서 절충해보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니, 고민의 시작점이 비슷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의 그림을 재현해보면서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작업을 시작했어요. 근데 그 그림에는 평양냉면 이미지가 있고 도시의 풍경도 있어요. (참고 도판) 저는 그들의 개연성을 생각하지 않고, 이미지의 질감을 생각했어요. 어떤 화면은 평면 미술을 찍은 이미지이고, 어떤 것은 공간을, 어떤 건 텔레비전 화면을 찍은 이미지거든요. 이질적인 것들이 혼합되면 불협화음이 생기잖아요. 불편한 공존 상태 같은, 대치 상태라고 하는 게 나을까?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구성했어요.

권순우 : 서로 다른 매체에 있던 이미지들이 회화라는 하나의 매체 안에서 재현되고, 그것들이 엉겨 붙는 상황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으셨던 것이군요.

손주영 : 질감 차이라는 측면에서 ‘회화가 더 용이하다’라는 말씀이신 건가요?

백경호 : 재현 방식에 따라서 조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디지털 영역에서 재현할 수도 있지만, 그건 만질 수 있는 영역이 아니잖아요. 제가 회화를 하는 이유는, 물감과 붓을 다루면 빛바랜 실존감이 충전되는 듯한 느낌이 있어요. 페티쉬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지금은 그런 걸 대리해줄 수 있는 행위만으로도 좋은 것 같아요. 만질 수 없는 것들을 만질 수도 있는….

권순우 : 아… 만질 수 없는 것들….

백경호 : 만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감상은 모니터 건너에서 많이 생겼어요. 요즘 느끼는 공허함, 허무함도 거기서 발생하는 것 같고. 사실 지금은 디지털 세계로 가는 전환기일 수도 있잖아요. 앞으로는 디지털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질 거니까. 아까 얘기하던 큐비스트들도 달랐을 거 같아요. 관점이 바뀐 거잖아요. 그 사람들은 구조를 만들어 놓고, 구역을 자의적으로 나누고 그 안을 칠했잖아요. 저는 그 사람들이 새로운 구성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하나의 빛, 원근 등의 기존 재현의 규칙에서 자유롭기 위해서 그런 작업을 했달까? 그걸 하면서 자유로워졌는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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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영 : 작가님은 디지털로 넘어가는 것에 약간의 슬픔 같은 걸 느끼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그 사람들도 뭔가 새로운 걸 하려 했다기보다 자기들이 하던 걸 마저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림 안에 더 잡아두고 싶은.

권순우 : 더는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생각 같은 걸까요?

손주영 :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그림 보면서) 작년에 카카오톡 같은 이미지가 등장할 때부터 그런 게 있었구나. 근데 달걀은 또 되게 다른 얘긴 거 같은데.

권순우 : 달걀은 왜 등장하나요?

백경호 : 원래는 무정란이었어요. 씨 없는 달걀 있잖아요.

손주영 : 감정이입 한 건가요?ㅎㅎ.

백경호 : 많은 사람이 이입된 대상을 본 거죠. 그런거 있잖아요. 왜, 고자 같은 거.

권순우 : 굉장히 상징적인 도상이네요?

백경호 : 창조할 수 없고, 크게 해낼 수 없는. 언젠가 무정란이 더 맛있고 영양가가 많다는 글을 봤어요. 저는 그게 사람들의 사정과 연결된다고 생각했어요.

권순우 : 아 그래요? 오… 진짜 고자 세상이네.

백경호 : 고자가 더 쓸모 있다는 건가? 그리고 평소에 달걀에 관심이 많았어요. 달걀은 뭐라고 판명되지 않는, 한 번에 인식되지 않는 오브제였어요. 달걀이 소재로 등장하는 미술품을 흥미롭게 보곤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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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영 : 디지털적인 것을 본격적으로 다루시면서 소위 말하는 ‘회화적인’ 붓질이 더 많이 보이는 것 같은데, 그것에 관해서 말해주세요.
백경호 : 최근에 그림을 일부러 거칠게 그리려 해봤는데, 핸드폰 사진으로 그 그림들을 찍어보면 별 차이가 없더라고요. 그런 플랫한 이미지들과 차이를 발견할 때마다 회화적인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어요. 이전에는 그림을 그릴 때 조형적인 캐릭터를 만들고 윤곽선도 만들고 좀 더 그림을 플랫하게 만들어 보려 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회화적인 것에 대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걸 피해왔던 것 같아요. 가령 이전에는 그림에 붓 자국을 내는 것을 제가 불편해했어요.

손주영 : 언제까지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백경호 : 올해 전까지? 이전에는 제가 미시적으로 캔버스를 대했던 거죠. 이제는 좀 더 거시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손주영 : 그게 아까 얘기한 재현의 문제인가요?

백경호 : 핸드폰으로 찍는 것과 대상을 보는 경우 둘 다를 생각해 보면, 더 큰 틀에서 이미지를 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진으로 봤을 때나 실제로 대했을 때는 다르긴 하지만, 평면으로 다 귀결되니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손주영 : 아까 말했던 것처럼 잠깐 잡아두려는 느낌이 더 드는 것 같기도 하네요. 작가님의 예전 그림은, 색과 컴퍼지션의 문제에 집중하는 면이 있었죠. 나열했던 것들을 따로 그려놓고 붙이면서 그 비중이 작아졌고요. 이번 개인전 그림들은 예전과 비슷하게 레이어를 구성하는 듯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상황이에요. 따로 그린 것을 붙여 본 상황을 지나와서, 다시 화면 안에서 구성하는 건 예전과 다르죠. 오히려 회화의 재현 가능성을 실험한다고 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

백경호 : 이번 개인전을 통해서 테스트를 해봤어요. 따로 그린 것들을 모자이크처럼 붙이는 건 일부러 구성을 안 한 거잖아요. 그 그림의 이야기는 길게 가져가고 싶은데, 구성은 어떻게든 해보고 싶은 거에요. 그래서 컴퓨터를 통해서 각 요소를 한 화면으로 구성해봤어요.

권순우 : 그럼 전체 이미지가 파일로 있는 건가요?

백경호 : 네.

손주영 : 프로젝션하고 그리신거죠?

백경호 : 프로젝션한 것도 있고, 안 한 것도 있어요. 캔버스 여러 개로 구성할 때는 긴장이 주는 재미가 있는데, 한 화면에선 다르잖아요. 어떤 구성이 가능한지, 이미지 질감 차이는 어떻게 낼지. 이런 부분을 알아보고 싶었어요. 해봐야 알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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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우 : 네. 디지털이 억지로 평면에 밀어버리는 여러 종류의 이미지를 합성하고, 그걸 작가님이 상상하는 다른 이미지 종류의 질감으로 회화 속에서 재현해보시는 시도라고 봐도 될까요?

백경호 : 질감 표현이 재현할 때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연구하고 싶을 때, 밑그림이 지도처럼 있으면 더 집중하기 좋잖아요. 원본이 있고, 그걸 바탕으로 캔버스에 회화를 해야 비교 할 수 있고요. 이게 우발적인 일이 없으니까 재미가 없을 수도 있는데, 시작 단계에서는 제한을 둬야 다음을 위한 질문을 잘할 수 있으니까요. 컴퓨터로 만든 시안을 바탕으로 회화를 한 게 개인전에 그대로 있어요. 그걸 보면서 드는 아쉬움과 좀 더 심화해서 알고 싶은 것을 요즘 생각하고 있어요. 같은 이미지를 다시 그려볼 수도 있을 것 같고, 다른 이미지를 추가해서 섞은 시안을 짜서 그려볼 수 있을 것도 같고. 그러니까 재현하는 방식?

손주영 : 사실 이번 개인전에서 하셨던, 컴퓨터에서 합성한 이미지를 그리는 방식이 동시대 우리 또래 (회화) 작가들이 일반적으로 그리는 방법이잖아요. 그런데 거기까지 도달한 과정이 다르다는 게 재밌네요.

백경호 : 방법이 특별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좀 특이한 방식이 없나 찾아보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그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방식, 방법이 같더라도 다들 이미지에 대한 감정이 다르니까요. 재현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있는 것 같지만 어떤 것은 좋게 느껴지고, 어떤 것들은 별로인데 그게 무슨 차이일지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그전에는 이미지 콜라주 같은 시도를 했다가 최근에는 리얼리즘에 관심을 두게 되었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변의 다른 회화에 대해서도 좀 더 알게 된 것 같기도 하고요. 원래는 재현하는 것을 별로 안 좋아했어요. 특히 붓질로 하는 재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손주영 : 재현을 싫어하던 시기가 언제죠?

백경호 : 학부 2학년이었던 2008년부터 작년까지 계속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다 그런 것들이 쓸데없는 생각이었다는 걸 근래 깨달았어요. 회화적인 것과 추상과는 또 다른, 재현할 때 중요한 어떤 것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알게 된 것들에 대해 리서치도 해보고. 하다 보니 재현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학교에 계신 선생님들과 얘기할 때, 이게 재미있는 것 같다 말씀을 드리니 “그러니까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이걸 붙잡고 있겠지.”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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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영 :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서 판매의 경험이 있으신지, 그리고 기존에 작품을 팔기 위한 노력을 해 본 경험이 있으신지요?

백경호 : 판매 경험 있어요.

손주영 : 어디서 파셨죠?

백경호 : 굿즈랑g8ds….

손주영 : 반지하 굿즈g8ds 말씀하시는 거죠?

백경호 : 네 거기. 그리고 또 최근에 어떤 그룹전에서 판 적이 있어요.

권순우 : 그럼 최근에 판매한 건데, 반지하 굿즈g8ds랑 말씀하신 그룹전 이전에는 그림을 따로 판 적이 없는 건가요?

백경호 : 네, 없었어요.

권, 손 : 아….

손주영 : 반지하 굿즈g8ds에서는 색연필 드로잉을 파셨던 거죠? 몇 개나 팔렸나요?

백경호 : 3개요. 그땐 판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았어요.

손주영 : 얼마에 파셨는데요?

백경호 : 십… 얼마 정도?

권순우 : 십만 원이요? 꽤 낮은 가격이네요.

백경호 : 그냥 그랬어요. 처음 하는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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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영 : 그렇군요. 그러면 아까 여쭤봤던, 작가님이 작품을 팔려고 개인적으로 노력해본 경험이 있으신지에 대한 질문을 드릴게요.

백경호 : 없지요. 그건 갤러리가 해야죠.

손주영 : 판매는 갤러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뭔가요. 작가는 그림만 그리면 되니까?

백경호 : 음….

손주영 : 생각해본 적이 없다?

백경호 : 그건 원래 갤러리가 하는 일이 아닌가? 능력부족이라고 해야 하나?

권순우 : 하지만 갤러리가 모든 작가의 그림을 팔아주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능력 부족이란 말은 작가의 능력 부족이란 말인가요?

백경호 : 아니죠. 내 잘못이 어딨어. (일동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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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영 : 좋은 대답입니다ㅎㅎ. 그러면 작업을 통한 수입원은 거의 없으신 듯한데, 작업비용은 어떻게 충당하시나요?

백경호 : 작업비는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이번에도 연초에 일을 조금 했어요.

권순우 : 무슨 일을 하셨어요?

백경호 : 벽화를 했어요. 그걸로 약간의 재료비와 생활비에 보태 쓸 수 있는 돈을 마련했어요. 부족한 생활비는 부모님 지원을 받고. 재료비는 갑자기 목돈이 들어가니까, 이런 식으로 종종 일해야 돼요.

손주영 : 그러면 평소에도 항상 거의 아르바이트로 재료비를 충당하시는 거죠? 그리고 그 일은 보통 벽화?

백경호 : 종종 그룹전을 하게 될 때 받는 지원금이 있어요.

권순우 : 그런 지원금은 보통 많이 부족하지 않나요?

백경호 : 지원금이 없는 전시도 있지만, 지원금이 있는 전시는 어느 정도 주더라고요. 당연히 충분하진 않지만 도움이 되긴 해요.

권순우 : 수입이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지원금이 재료비 충당에 꽤 도움이 된다는 말이죠?

백경호 : 네. 일단 캔버스와 물감을 살 수 있는 정도니까요. 페인팅하는 사람들은 다 비슷한 거 같아요. 돈 없으면 작업하기 힘든 거 같아요. 캔버스를 한꺼번에 많이 주문해서 쓰는 게 좋은데, 돈 없으면 자꾸 사람이 작아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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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우 : 혹시 이전의 색연필 드로잉 시리즈가 그런 재정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요?

백경호 : 색연필 드로잉은 그림이 너무 안 되고, 재미도 없어지고 우울해서 시작한 거에요. 모양자에 색연필을 대고 그으면, 뭔가 편안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 때 그림의 자의적인 부분을 의심하던 시기였는데, 선을 긋다 보면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을 안 하게 되더라고요.

권순우 : 그때 작업들은 재정 상황 때문이라기보다는 우연히 시작한 작업이라고 봐야겠군요.

백경호 : 그때는 이게 작업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해본 적도 없었고.

권순우 : 그러면 개인적으로 그때는 작업을 안 하던 시기라 할 수도 있겠네요.

백경호 : 그때 컴퓨터를 바탕으로 캔버스 회화작업도 하고 있긴 했어요.

권순우 : 와. 그럼 컴퓨터 작업은 결국 지금 포트폴리오에는 없고, 그때 작업이라 생각하시지 않던 색연필 드로잉 시리즈는 포트폴리오에 넣은 거네요.

백경호 : 네. 그게 좀 신기하죠.

손주영 : 그 작업을 하실 때가 2012년 중순쯤인가요?

백경호 : 네. 오래되긴 했네요. 처음엔 취미처럼 했어요.

권순우 : 일종의 작가 개인의 공백기 낙서 같은 작업이었는데, 이제는 그 그림을 팔기도 하는 거네요. (웃음)

백경호 : 네. ㅎㅎ그래서 저는 저 때 그림들이 시행착오를 한 내용이라고 생각해요. 작업에 대해 별 설명도 안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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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영 : 혹시 작가로서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백경호 : ㅎㅎ생뚱맞네. 음… 좀 더 잘해야겠다?

손주영 : ㅎㅎ아니 그건 다짐이고요. 다시 질문하면, 사회에서 작가라는 카테고리에 속해있는 사람으로서의 고민이 뭔가요?

백경호 : 아… 이제 학교를 졸업하는 만큼 생계와 작업에 있어서, 밸런스를 잘 유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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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영 : 그것도 다짐이네요. 별 생각이 없으신 거 같은데, 그럼 다음 질문으로ㅎㅎ. 굿-즈 참여 제의를 받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백경호 : 반지하의 굿즈g8ds가 연장되고 확장되는구나 생각이 들었죠.

손주영 : 그럼 굿즈g8ds 참여하실 때는 어떤 생각으로 하셨어요? 굿즈g8ds라는 걸 어떤거로 이해하셨던 거에요?

백경호 : 처음엔 좀 의아했어요. ‘이런 곳에서 작품 판매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반지하를 아는 사람이 좀 생겼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서울의 변두리에 있는 반지하라는 공간과 상업을 염두하고 있는 굿즈g8ds라는 공간의 차이가 있는 건가 싶었어요. 저는 그 당시에 판매에 대한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생각이 있었더라면 좀 더 적정 가격을 매겼을 테니까요.

권순우 : 근데 그때 굿즈g8ds 입점하자마자 완판된 거로 알고 있어요.

백경호 : 네. 그게 좀 의외였어요.

손주영 : 그때 그림을 산 사람 대부분이 아는 사람 아니었나요?

백경호 : 나중에 알고 보니 아는 사람들이었어요. 오히려 미술인이 많이 구매하는 것 같더라고요.

손주영 : 그럼 굿-즈 참여 제안은 굿즈g8ds의 돈선필 씨가 제안했고, ‘굿즈g8ds랑 비슷하겠지.’ 라고 생각하고 참여하신 거잖아요. 그러면 이번 굿-즈 공간팀과 미팅에서 굿-즈와 굿즈g8ds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끼셨을 텐데, 굿-즈 참여 작가로서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백경호 : 굿-즈 측이 가진 이상이 있는 것 같은데, 그쪽에 딱 맞출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존의 어떤 상업성과는 경계 짓고 싶어 한다는 인상을 받았고, 그 부분을 작가에게도 어느 정도 바라는 것 같아요. 그런데 굿-즈 내부에서도 어느 정도 방향은 있지만, 개념화가 정확히 된 거 같진 않더라고요.

권순우 : 맞아요. 굿-즈 측이 원하는 방향을 작가에게도 원한다는 인상을 받으셨다는 건, 굿-즈 측에서 백경호 작가님에게 따로 어떤 작업을 하길 요구한 적이 있는 건가요?

백경호 : 처음에 저는 그냥 드로잉을 생각했었는데, 진부한거 말고 좀 더 재밌는거 해보라는 말을 들었어요ㅎㅎ. 굿-즈 기획에 그대로 맞춘다기보다는, 굿-즈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떤 것에 대해 작가도 같이 생각해보길 바란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서로 어긋나는 부분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굿-즈 기획 측과 여러 번 미팅했는데, 그 과정에서 신뢰감이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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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우 : 그래서 이번에 내는 결과물이….

백경호 : 저는 피규어를 제작했어요. 의릉과, 의릉의 부분들. 신도라는 돌길이 있어요. 그것들은 왕릉의, 부재한 어떤 것들의 조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그것들을 두 종류의 피규어로 제작해서 이번 굿-즈에 출품할 예정이에요.
권순우 : 지금까지 인터뷰에서 백경호 씨 작업 관련해서 회화 얘기만 했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굿-즈에 내시는 의릉이라든지, 피규어라든지 하는 건 어쩌다 나오게 된 건가요?

백경호 : ‘내가 사는 지역, 풍경에 대해 어떻게 조각의 영역에서 다뤄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냉장고 자석 조각품을 참고했죠. 여러 나라의 도시 모습으로 만든 냉장고 자석 조각을 수집하는 지인이 있거든요. 조각품들이 나라를 대표하는 이미지나 랜드마크를 로고처럼 사용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돌곶이의 주요 명소인 의릉을 떠올렸어요. 재개발 때문에 의릉 주변에 빈집이 종종 생기잖아요. 여기서 부재한 것들을 위한 자리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채취해 조각으로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런 것들을 피규어로 만들고 상품화하려다 보니, 냉장고 같은 누군가의 개인적인 장소에 제 작업이 배치되는 것까지 생각하게 됐어요. 굿-즈 측에서는 작가 작업의 파생물을 바라는 것 같지만, 저는 제 작업에서 연장된다기보다, 피규어 산업의 문화를 차용을 해서 상품을 만들어 보자고 계획했어요. 그리고 무언가를 팔게 된다면, 항상 부재한 것들, 무덤이나 귀신을 위한 돌길 같은 것을 팔고 싶었어요. 그에 대한 이유는 개인적인 거라 여기까지 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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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우 :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 작업이 백경호 작가의 비-사이드 작업이 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계속 이어질 작업일까요?

백경호 :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확실히 굿-즈에 참가했기 때문에 이 작업을 하게 됐어요.

권순우 : 굿-즈에 참여하시지 않고 개인적으로 작업을 진행하셨다면, 하던 페인팅을 그대로 진행하고 계셨을 확률이 크다는 말이죠?

백경호 : 이렇게 경계를 짓거나 개념 지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재밌어요. 서로 생각이 어긋나는 것도 재밌고요. 지금은 의릉을 가지고 기념품 같은 형식으로 디테일을 다듬어가며 준비하고 있어요.

손주영 : 제작하고 있나요?

백경호 : 제작은 아직 안 들어가고, 시안, 밑그림만 들어갔어요.

손주영 : 어떤 재료로 하실 건가요?

백경호 : 재료는 아직 안 정했는데요. 중요한 건 채색이라고 생각해요.

권순우 : 아, 채색이요.

백경호 : 유희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냉장고 자석인데 저는 이번에 한쪽으로만 붙일 수 없게 자석을 여기저기 박아두려고 하거든요. 기능장애가 일어난 모습이라고 할까요. 그런 형태로 만들어 보려고요. 살 수 있지만, 자석 위치는 정할 수 없는 그런.

권순우 : 기대되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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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영 : 그러면 굿-즈가 이번 작업의 계기가 됐다고 할 수 있는 거죠?

백경호 : 네, 계기가 된 거죠. 판을 깔아준 거죠. 굿-즈가.

손주영 : 그러면 이후에 할 작업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냥 한번 이런 것을 해본 걸까요.

백경호 : 사실 다음은 잘 모르겠지만, 굿-즈가 ‘작가에게, 자기 작업과 연계된 상품이 어떤 게 될 수 있을까?’하는 질문을 던지고, 소비자와 제품 같은 것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게 했어요. 어떻게 보면 굿-즈라는 행사 자체가 그에 대한 대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판매하는 행위가 어떤 느낌일까 생각할 때 좀 우스꽝스럽기도 하거든요. 의릉을 판매하고 누군가 그것을 자기 집의 냉장고에 붙이게 되는 상황. 몇 개나 만들어 볼까 상상하는 게 재미있어요.

권순우 : 많이 만드세요. 많이 팔릴 거에요. (일동 웃음).

손주영 : ㅎㅎ이거 책임질 수 있어요?

권순우 : 아, 다 팔릴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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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 권순우, 손주영
편집 : 권순우, 김지현, 손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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